'극혐'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ㅡ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정지인 옮김, 다산초당, 2017.

“한 번도 멸시당해본 적 없는 사람, 한 번도 사회적 경멸에 맞서 방어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는 사람, 보이지 않는 존재 또는 괴물 같은 존재로 만드는 틀에 갇혀본 적 없는 사람은 모욕당하거나 상처를 입는 순간에도 ‘분노한’ 사람이나 ‘유머감각 없는’ 사람,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아무렇지 않게 유쾌한 척 고마워하는 척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정지인 옮김, 다산초당, 123~124쪽.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선을 멈춰 세우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혐오사회>는 그런 점에서 꽤 괜찮은 책이다. 어느 구절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 깜짝 놀라 반성의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느 구절에서는 울컥해서 차마 책장을 넘길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에 있다.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난민이나 이주민, 흑인, 성소수자, 여성 등 우리가 혐오하고 증오하는 모든 이들, 사회로부터 멸시와 차별, 폭력에 노출된 채 배제되어 있는 모든 이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차별받아 마땅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웃고 떠들고 기뻐하고 화를 내며 때론 실수도 잘못도 저지를 수 있는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를 가진 사람.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에는 관심이 적고, 그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고통에는 둔감하다. “표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거나 비하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용인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힘을 행사하는지 감도 잡지 못한다.”(118쪽.) 이때 필요한 것이 타인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타인(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둔감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혐오와 증오에 쉽게 노출된다. 소수자나 약자를 향한 편견에 의심을 내주고 마침내 직간접적으로 차별을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혐오’ 문제를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남성혐오주의자’ ‘메갈충’ ‘여성우월주의자’ ‘잘못된 페미니즘’ 등의 프레임을 덧씌워 입을 막으려 하거나, 성소수자들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데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거나 ‘죄인’ ‘환자’ 취급하거나 무작정 ‘나중에’를 외치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렇다. 이런 혐오와 차별에 맞서지 않는다면, 직접 가담하거나 그저 내 일이 아니라고 방관한 채 직간접적으로 ‘증오에 공모’한다면, 사회적 갈등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이 끔찍한 혐오사회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린 저널리스트이자, 성소수자다. 또한 악셀 호네트의 제자다. 나름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하버마스-호네트로 이어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정통을 잇는 셈이다. 여러 모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무언가를 단지 ‘그건 말하기 어렵다’는 데서 그치는 것은 부주의하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말하기 어려운 것,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말을 더욱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럼 그들이 말하려는 바를 알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일상적으로 혐오와 증오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피해에 대해 논리정연하고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진다.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말조차 잃어버리는 데 있다. “굴욕을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시간이 흐르면 우울증과 비슷한 상태에 빠진다. (…) 혐오의 틀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우울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 (…) (혐오에) 늘 치이다보면 화가 나고 격앙되는 데 그치지 않고 마비된 사람처럼 무감각해진다.”(120쪽.) 그의 말은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의 표정과 입술 모양에 집중할 때 들을 수 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얼굴을 바라볼 때에야, 즉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환대할 때에야, 비로소 이 끔찍한 혐오사회는 멈춰설 것이다. 이 책은 그 방법에 대해 논쟁거리를 던지고 있는 책이자, 우리에게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책이다.


“증오의 광신주의에 맞서려면 (...) 모든 사소하고 저열한 형태의 멸시와 굴욕에 용기 있게 이의를 제기해야 할 뿐 아니라, 배제된 이들을 지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법률과 실천도 필요하다. 그밖에 다른 관점들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시킬 수 있는 다른 서사들도 필요하다. 증오의 틀을 무너뜨려야만, '전에는 서로 다른 것들만 보였던 곳에서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때에만 공감이 생겨날 수 있다.”(218쪽)


지금 여기의 삶 ㅡ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시간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이러한 일방향성과 비가역성을 과학은 엔트로피 법칙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이 진리 앞에 후회라는 고통에 시달리기도 하며, 법칙을 거스르려 자신이 경험했던 시간을 문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으로 후세에 전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경험을 삶에 다시 녹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말이다. 과... » 내용보기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옮김, 이후, 2004.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 » 내용보기

커뮤니케이션의 이해ㅡ황인찬, <서정>

“저 나무 좀 봐”거대한 나무를 가리키며 그 애가 말했다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였다 무수히 뻗어 나온 가지와 잎들이 일대를 완전한 어둠으로 뒤덮고 있었다 어디서 솟아난 것일까 저렇게 큰 나무는 본 적이 없다 그 애의 팔이 자꾸 내 몸에 닿는 것이 신경 쓰인다팔월의 열기도 나무의 어둠 아래로는 미치지 않았다“이곳은 누가 선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캄캄... » 내용보기

용서와 화해에 대하여

"용서될 수 없는 행동들이 많이 있다.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나치를 용서하겠다고 주제넘게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대인 민족을 대표해 이스라엘이 그런 선언을 한다 하더라도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며, 그 속임수의 의도는 혐오스러울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인류가 언젠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사건이 아... »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