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환,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책세상, 2012‘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두 인물이 만났다. 한 명은 약관(弱冠)을 넘은지 채 몇 년이 안 되는 새파란 젊은이지만 곧 왕위에 오를 세손(世孫) 이산(李祘)이고,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불혹(不惑)을 넘긴 중년의 나이에야 첫 벼슬길(세손의 스승)에 오른 담헌(湛軒) 홍대용이다. 어린 세손과 나이 든 신하, 그것도 제자와 스승의 관계라면 언뜻 곧바로 위계(?)가 바로 설 법도 하건만, 총명하기로는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산, 역시 쉬 넘어가지 않는다. 경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꼬치꼬치 캐묻더니, 시치미를 뚝 떼고 중년의 스승에게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서'라 할 수 있는 《논어》에 나오는 글귀의 뜻을 묻는다. 그야말로 스승에게 호된 신고식(?)을 한 셈이다. 하긴, 조선시대의 신고식이라 할 수 있는 면신례는 대학자인 율곡(栗谷) 이이 선생마저 손사래를 쳤다고 하는데, 장차 국본(國本)이 될 이의 스승자리는 또 어련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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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 : 세상 풍속이 점점 변하더구나. 밥상에 올리는 그릇 같은 것도 또한 예전과 지금이 다르니 무슨 까닭에 그런 것인가? (……) 그러면 어느 것이 나은가?
홍국영 : 줄여서 좁히는 것이 넓게 하느니만 못함이 분명합니다. 신의 집에서는 아직 옛 그릇을 사용합니다.
세손 : 계방은 집에서 어떤 것을 사용하는가?
홍대용 : 신의 집에서는 지금 만든 것을 사용합니다.김도환,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책세상, 2012, 227~228쪽.
그릇을 비유로 자신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사람. 시쳇말로 멋 난다. 즉위 후, 문체반정(文體反正)을 통해 정학(正學)인 성리학을 바로 세워 군사(君師), 즉 임금이자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스승이 되기를 바랐던 정조, 그런 정조에게 아부하는 홍국영, 그리고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짐짓 자신의 고집을 지키는 홍대용. 홍대용은 고학(古學)에 뜻을 두었지만, 그가 추구한 고(古)는 옛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살리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홍대용으로 하여금 제자 정조와는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는 위에서 언급한 서연에서의 문답을 기록한 홍대용의 《서연문답》을 옮긴 것이되, 단순히 현대어로 번역하고 만 것이 아니다.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당대의 풍부한 사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문답이 이루어졌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적 배경에 대해 상세하면서도 맛깔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서연의 현장에 직접 있는 것처럼 글의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마치 당대 최고 수준의 논객 둘이 출연한 수준 높은 <백분 토론>을 감상한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재미있는데다가 내용까지 알찬 명품 사극을 본 것 같기도 한 느낌이랄까. 수준 높은 논객들이 벌인 논쟁에 취해 문답 이후 양자의 삶과 문답의 의의를 다룬 '에필로그'와 '보론'까지 읽고 나면, 어느새 당대의 현실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한 명은 옛것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고, 다른 한 명은 옛것의 정신을 지키되 새로운 것을 능히 받아들이는) 해결하려 한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나눈 우애와 치열함, 그리고 사유의 깊이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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